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3국 동맹 전쟁 (문단 편집) === 영국 개입설 === 전쟁 원인에 대해 한국에는 전 세계 모든 나라를 자기네 경제권으로 편입시켜서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려는 [[제국주의]] 열강에게 문호를 닫아건 파라과이는 눈엣가시였으며 자기네 빚을 얻어쓰지 않는 괘씸한 파라과이에 열 받은 [[영국]]의 부추김을 받은 [[브라질 제국]]과 [[아르헨티나]]가 [[우루과이]] 내전에서 반파라과이파를 밀면서 전쟁이 일어났다고 널리 알려졌다. 하지만 '''영국이 3국 동맹 전쟁을 일으켰다는 이론은 1990년대에 이미 폐기'''되었다. 1960년대와 70년대에 한창 [[좌파]] 운동의 바람이 불 때 이런 이론을 주창한 남미의 좌파 지식인들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이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. 그냥 대충 심증을 가지고 한 [[혐성국]] 드립 같은 추측일 뿐이었다. 당시 파라과이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내륙국이었기 때문에 유럽 열강을 열받게 할 만한 영향력은 전혀 없었고 영국이 전쟁의 흑막이었다는 주장의 다른 근거, 즉 영국이 미국의 [[남북전쟁]] 이후 초토화된 미국 남부 대신 파라과이를 수탈해서 목화를 얻고자 했다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. 이미 [[이집트]]를 장악하여 이집트에서 [[목화]]를 값싸게 조달하던 상황[* 이집트산 목화는 [[고대]]부터 당시까지 최상등품으로 평가받았고 21세기에도 서구 브랜드 업계에서는 이집트산 면(Egyptian Cotton)을 최고로 친다.]에 전쟁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. 이렇게 근거가 부실한 주장이 머나먼 한국까지 퍼지게 된 이유는 [[브라질]]과 [[아르헨티나]]가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[[영국]]에 누명을 뒤집어씌운 뒤 이를 교과서에까지 실어 가면서 대대적으로 밀어줬기 때문이다. 19세기 초중반 이후 명목상 주권 독립국들이 이미 들어서 있었던 중남미엔 제한적으로 개입했던 전성기 영국 제국주의와 달리 [[냉전]] 시대 [[미국]]의 라틴아메리카권 전반에 대한 간섭과 갑질은 더 심했다. 이에 따른 반동으로 라틴아메리카에는 이전에는 딱히 호응이 없었던 범히스파노주의(panhispanismo), 범라틴아메리카주의가 크게 발흥했다. 3국 동맹 전쟁 종전으로부터 한 100년 뒤 우루과이나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이나 파라과이나 멕시코나 니카라과나 콜롬비아나 전부 다 평등하게 (...) 그링고들[* gringo. 중남미에서 미국인들을 부르는 멸칭이다.]에게 내정간섭이나 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그랑고들의 협력자들이 군사독재를 펼치고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다 보니 서로 유대감이 생겼고 반대로 아무리 전쟁 발발의 명분은 방어전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라틴아메리카 대국 둘이서 '형제' 라틴아메리카 나라를 박살낸 이 역사는 브라질, 아르헨티나 지식인들 본인들에게도 영 껄끄러운 사실이 되어 버렸다.[* 특히 아르헨티나랑 브라질 양국 체급이랑 상호 관계를 보고 다시 이 전쟁을 돌아보자. 지금까지도 양국 국민들도 서로 인정하는 극렬 라이벌 관계의 양대 남미 패권 강대국이 자세한 문맥은 어쨌든간에 딱 봐도 비교도 안 되게 조그만한 나라 하나 서로 힘을 합쳐 제노사이드 수준으로 조져 버린 이 전쟁은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그림이 좋게 나올 수 없었다.] 이 영국 개입설을 가장 열심히 주장하던 사람들은 냉전 시대 아르헨티나, 우루과이의 지식인이었는데[* 아르헨티나의 대국으로써의 국가적 자존심과 유럽발 사상, 문화적 조류의 영향을 강하게 받던 현지 환경 덕분에 세계대전기-냉전기 아르헨티나는 공산주의 지식인 [[https://es.wikipedia.org/wiki/Liborio_Justo|리보리오 후스토]], [[체 게바라]] 같은 범라틴아메리카주의, 특히 '양키 제국주의자에 대항한 중남미 국가들의 연대'를 부르짖은 좌파 범라틴아메리카주의가 강하게 발달했다.] 3국 동맹 전쟁 당시의 문맥과는 동떨어진 범라틴아메리카주의적 관점에서 영국 개입설은 매우 매력적이었다.[* 위 내용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 소재 역사학자 Esteban Chiaradía의 논문 "El debate historiográfico sobre la Guerra de la Triple Alianza (1864-1870), la implicancia británica y la cuestión algodonera en el marco de la gestación del Estado nacional argentino (2018)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.] 오히려 영국 개입설을 부정하는 [[파라과이]]인들은 자국의 어린이들을 학살한 [[아르헨티나]]를 [[포클랜드 전쟁]]에서 혼내준 [[영국]]을 [[친영|매우 좋아한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